며칠 전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 장관 집안에 흉사(凶事)가 있어, 오랜만에 이틀이란 시간을 함께했다.
그 자리엔 김정길 전 장관의 장자(長子)인 창희도 함께 했었는데, 어쩌다가 문재인 전 대통령 딸인 문다혜의 음주 운전 사건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다가 자연스레 장제원 전 의원의 아들인 노엘이라는 친구 이름도 거명되었고.
“재호 아저씨가 절 처음 만났을 때, 저한테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와? 뭐라고 하던데.”
“네가 김정길 아들이고 지랄이고, 쓸데없이 나대면 나한테 뒈지게 맞는다.”
어쨌든 그랬답니다.
저야 까마득한 옛일이라 기억나지 않지만, 제 성격을 고려한다면 얼마든지 저런 말을 했을 것입니다.
이 빌어먹을 성격이 청춘인 나이였던 저 때만 아니라, 40대 중반이었던 2009년에도 똑 같았거든요.
예전 김정길 전 장관 팬 카페에도 그 내용을 올린 적 있지만, 김정길 전 장관이 유리창 너머로 지켜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김 전 장관의 늦둥이 뒤통수를 때려서 책상에 놓인 모니터가 바닥으로 떨어질 정도로 제대로 때렸었거든요.
뒤통수를 맞고 억울하다는 눈빛으로, 울먹거리던 그놈에게 했던 말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아저씨가 다음에 또 인사하지 않으면, 그때는 말로 하지 않는다고 했지?”
“...........”
“넌 어떻게 된 놈이, 사람 새끼로 태어났다면 어른 말은 제대로 들어야지. 이번에 네 번째란 건 알아?”
“예.”
“야, 이 새끼야. 네가 이따위로 하면, 어른이 오셔도 인사조차 하지 않고 모니터에 대가리 처박고 있으면, 찾아오신 손님이 속으로 뭐라고 생각하겠어?”
“...........”
“네 아버지 앞에서는 ‘장관님’ ‘장관님’ 하면서 굽실대면서도, 속으로는 ‘김정길이 자식 농사 글렀네. 꼴에 잘난 척하더니 꼴 좋다.’ 그런단 말이다. 너 때문에, 네 아버지가 자식 농사 잘못했다는 소리가 나와야겠어?”
정말 눈물이 쏙 빠지도록 거의 30분 가까이 잔소리를 해댔고, 결국 그놈은 울먹거리면서 인사하고 집으로 도망치다시피 내뺐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알라인데 말로 하지….”
“알라는 무슨 알랍니까? ◯◯이 나이가 몇인 데요. 지금 저런 버릇 고쳐놓지 않으면 평생 갈 거고, 자칫하다간 장관님까지 구설에 오를 수 있습니다.”
그놈이 도망치듯 사무실을 나가고 난 후 김 전 장관이 바깥으로 나와 서운함을 표시했지만, 나는 죄송하다는 말 대신에 당연한 일을 했다고 대답했었다.
그리고 15년 전의 그 일의 결과는, 재작년 창희 결혼식에서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아저씨.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이가? 정말 오랜만이네. 우리 악수나 한번 하자.”
그놈도 나이가 들어 얼굴이 많이 변했기에 사실 그놈인 줄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나를 발견한 ◯◯이가 내게 달려와 인사를 건넸던 거다.
김정길 전 장관의 장자(長子)인 창희는 굳이 내가 잔소리할 이유가 없을 정도로 반듯한 놈이다.
이미 40대 중반에 접어든 친구에게 이놈 저놈 하는 게, 내가 너무 지나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릴 때부터 지켜봐 온 친구라는 걸 핑계로 대본다.
창희는 친구가 그다지 많지 않다.
고등학교 시절까지 창희가 바깥에서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한 적이 없었고, 그런 이유로 고등학교 시절 친구 대부분은 창희 또한 평범한 가정의 자식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김대중 국민의 정부’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입각한 후, 창희가 다니는 고등학교 요청으로 특강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문제는 김정길 전 장관의 장난기였다.
점잖게 특강을 끝냈으면 아무 문제 없었을 일을, 특강을 마무리하면서 이 학교에 자기 아들도 재학하고 있다고 밝혔던 것이다.
덕분에 창희가 가깝게 지내던 친구 대부분은 창희를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였고, 그 결과 창희에게 고등학교 친구는 몇 명 남지 않았다.
그중 한 놈은 지난번 창희 결혼식 때도 만났고, 현재 서울 시내 한 소방서에서 소방관으로 재직 중이다.
국민은 기사에서 정치인이나 재벌그룹의 자식들이 사고를 쳤다는 기사를 접하면, 분노하고 그 부모를 비난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나는 예전 장제원 전 의원의 아들이 사고를 쳤을 때나, 근래 문재인 전 대통령의 딸이 음주 운전으로 적발된 기사를 보고도 댓글 한번 달지 않았었다.
그 친구들을 비난할 수도, 그렇다고 그 친구들을 변호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단 부모 된 사람이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도 없고, 그 친구들의 행동이 대중에게 비난받아야 할 잘못임은 분명하다.
문제는 재벌그룹 회장이나 정치인 자녀는, 부모가 웬만큼 자식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비뚤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쁘고 정신없는 사람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재벌그룹 고위 경영진과 정치인이라고 말할 것이다.
새벽에 집을 나서서 새벽에 귀가하는 삶.
하루에 대여섯 끼를 챙겨 먹어야 하다가도, 어떤 날은 온종일 쫄쫄 굶을 수밖에 없을 정도의 정신없이 바쁜 일과를 소화해 내는 사람이, 바로 정치인과 재벌그룹의 고위 경영진이다.
물론 내가 말하는 정치인 속에 흔하디흔한 세비만 축내는 국회의원 중 대부분은 해당하지 않는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정치인은 진짜 정치인으로서 소명과 책임감을 가지고, 대한민국 발전에 도움이 되는 진짜 국회의원을 포함한 정치인일 뿐이다.
그들은 가정 대신에 일을 선택한 것이고, 그런 사람의 배우자 또한 제대로 내조(內助)하려면 정치인 이상으로 정치적이면서 바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결국 그들 부부 사이에 태어난 자식은, 부모의 사랑은커녕 기본적인 보살핌조차 받기 어렵다.
대신 그 부모들이 자식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은, 자녀들이 풍족히 쓸 액수의 용돈을 식탁 등에 올려두고 집을 나서는 방법이 대부분이다.
현실이 이러니 정치인이나 재벌그룹 고위 경영진의 자녀가, 어떻게 생활할 거라는 건 눈에 보듯 뻔하지 않겠는가?
일찍부터 엇나가서 비행 청소년이 될 수도 있고, 성인이 되어 술로 외로움과 답답함을 해소할 수도 있다.
부모로부터 소외되었다는 생각만큼, 인간을 외롭게 만드는 요인이 없을 테니 말이다.
그랬기에 나는 문다혜든 노엘이든, 그들 또한 일종의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 김정길 전 장관의 장자(長子)인, 창희란 친구는 대단한 놈이다.
스스로 절제할 줄 아는 삶, 그걸 이미 20대 때부터 알고 행동해 온 친구다.
창희란 친구는 부산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재원이다.
그런데 졸업 후 취업 대신에, 지금도 인디 음악을 한다고 설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창희 그 친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김정길 전 장관이 평생을 백수로 살았다고 말할 인생이지만, 김정길이란 이름이 정치권에서 가지는 무게감은 제법 묵직할 수밖에 없다.
3당 야합 이후 낙선의 연속이었지만, 부산에서 민주당이란 당의 지지율을 견인한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김정길이다.
이 부분은 제5회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하여 살펴보면 확실하게 증명되는데, 부산에서는 제5회 지방선거 당시만 해도 기초의원 후보조차 공천 신청하는 사람이 없어 후보를 내지 못했던 선거구가 제법 된다.
기초단체장인 구청장 후보 또한 14개 선거구 중에서 겨우 7개 선거구에 후보를 공천했을 뿐이고, 심지어 야권 단일후보를 내세웠음에도 아예 공천 신청자가 없던 선거구가 4개 선거구나 되었다.
기초의원 선거구에서 후보를 민주당만 아니라 야권 단일후보라는 이름으로 전부 공천할 수 있었던 지역이, 총 14개 선거구에서 김정길 전 장관의 지역구인 영도구와 민주당 세가 지속해서 강한 북구 그리고 신도시 개발로 청년 유입이 급격히 는 해운대구 그리고 이영철 위원장이 맹활약을 펼친 사상구가 전부였다.
그만큼 제5회 지방선거 이전까지 부산 민주당의 당세는 열악함 그 자체였고, 그 열악함 가운데서도 민주당을 지켜온 사람이 바로 김정길이었다.
그렇다고 제5회 지방선거에서 서거(逝去)하신,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이름을 팔아서 선거를 치르지도 않았다.
김정길 부산시장 후보 캠프에서는 의도적으로 노무현 색깔을 배제(쪽팔린다는 생각에)했고, 심지어 상징색마저 초반에는 옛 민주당의 상징색인 짙은 검붉은색을 고집했었다.
물론 이 상징색은 엉뚱한 누구 한 사람이 고집부리는 통에, 결국 시쭈구리한 연두색 계통으로 변질되었지만 말이다.
어쨌든지 간이 이런 저간의 이유로, 김정길은 낙선 거사이긴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한물 간 퇴물 정치인은 될 수가 없었다.
무관(無冠)의 제왕(帝王)
저 말이 정치인 김정길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다.
그런 김정길의 아들이었기에, 김정길의 장자(長子)인 창희는 동시대의 청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일반 기업에 취업하려고 해도, ‘김정길 아들이니 특혜를 받아 입사했을 거야’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을 테니. 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취업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랬기에 이 친구가 선택한 길이, 인디 음악이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대한민국 국민의 의무인, 병역의 의무 또한 화끈하게 치렀다.
전장(戰場)인 이라크 자이툰 부대 파병을 자처했었던 일이다.
사실 창희가 자이툰 부대로 파병 갔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그때 김정길 전 장관과 대판 싸웠다.
“죽을 팔자면 죽고, 살 팔자면 알아서 잘 살아 돌아온다.”
“하….”
그냥 보병으로 복무하면서 행정병으로 차출만 되지 않으면, 군 복무 중 특혜를 받았다는 의심을 피할 수 있을 것인데, 이 친구는 아예 그럴 가능성까지 뿌리째 뽑아버렸던 것이다.
그랬기에 창희와 통화하거나 얼굴을 마주할 때면, 나는 항상 기쁜 마음으로 웃을 수밖에 없다.
솔직히 나름 뿌듯하기도 하고.
사실 이놈과는, 예전부터 정치 현실을 두고 이야기를 자주 나누는 편이다.
내가 아는 또래의 그 누구보다 정무적인 감각이 뛰어난 친구니, 그 정무 감각과 판단 능력은 타고난 재능일 뿐 아니라 살아온 환경 덕분일 것이다.
그래서 항상 안타까운 마음에 출마를 강권해 보지만, 제 아버지가 살아온 과정이 어땠는지를 잘 아는 친구인 탓에 이빨도 먹히지 않는다.
굳이 왜 정치판이라는 진흙탕 또는 가시밭길에, 내가 왜 발을 들이밀어야 하느냐면서….
대한민국 정치판 아니 우리 민주당에는, 창희처럼 정무적 판단 능력이 뛰어나면서 올곧은 소리를 내뱉을 용기 있는 사람이 필요한데 말이다.
만일 이 친구가 정치에 입문해서 국회 등원에 성공한다면, 이탄희 전 의원과 제법 죽이 잘 맞는 그림이 나올 듯하기도 하다.
이탄희 의원과 마찬가지로 올곧음이 있으면서도, 이 친구는 이탄희 의원보다는 더 적극적이고 강한 톤의 소유자이니 말이다.
“창희야! 제발 정치 좀 하자! 아저씨가 부탁한다!”
다른 말은 다 듣겠다고 하던 친구인데, 이제 머리가 굵어진 탓인지 정치하자는 말에는 단호박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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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뒈지게 – 표준어가 아닌 속어에 속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