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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

이재명 호텔 경제와 치킨집 이야기에서, 박정희·전두환 냄새가 난다.

by 나정치 2025. 5. 21.

이재명의 치킨 가게 경제 연설을 유튜브에서 보다가, 문득 박정희와 전두환이 떠오른다.

 

이재명이 승수효과라 포장하는 표현이, 예전 박정희·전두환이 집권 당시 우리 경제가 나빠질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악용했던 경기 부양책인 건설과 부동산 경기를 띄우는 일이었다.

 

당시 그렇게 한 효과는 분명히 있었다.

 

 

1)

 

건설 현장이 늘어나면 건설 현장 노동자들에게 일자리가 창출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들이 임금을 받는(당시 그 임금을 일본식 조어인 간조라고 표현했다) 날은, 부산 전체가 들썩거렸을 정도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2000년대 초반 정도만 하더라도, 구미공단과 울산 지역의 월급날도 그러했었다.

 

일단 막노동자(노가다)들이 임금(간조)을 받으면, 가장 먼저 택시 운전하는 양반들이 떼돈을 버는 날이다.

 

막노동자들이 임금을 받아서 호주머니가 두둑해졌으니, 우선 택시로 기분부터 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택시는 서면에 있는 술집이나 아니면 완월동(행정구역상 초장동과 충무동 일대)으로, 막노동자(노가다)들을 수도 없이 실어 날랐었다.

 

그렇게 며칠 흥청망청 돈을 쓰고 나면, 자연적으로 부산 전체에 돈이 도니 일견 부산 경제가 살아난 듯한 느낌을 받는다.

 

물론 저렇게 부산 전체에 돈이 돌고 돌면, 그로 인해 혜택을 보는 다수가 분명히 생긴다.

 

하지만 실제 처음 돈을 손에 쥔 막노동자의, 이후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나는 건축공학과 출신이고, 설계 쪽보다 시공 쪽 월급이 많다는 이유로 대학 졸업 후 잠시 시공회사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

 

그때 현장 기사로 괴정동 한 건물의 시공을 맡았었는데, 보름마다 나오는 임금(간조)을 내가 회사에서 받아와 막노동자들에게 전달했었다.

 

그렇게 임금(간조)을 받은 막노동자들은 끼리끼리 어울려 주변 삼겹살집으로 가서 소주잔을 기울이거나, 뜨거운 피를 가진 젊은 층은 완월동으로 달려갔었다.

 

그게 아닌 취향이 약간 다른 양반들은 소위 말하는 감전동 뽀뿌라마치로 달려갔었고.

 

그렇게 며칠간 돈 쓰는 재미에 빠져 살다가 보면 자연 작업 진척 속도가 늦어지고, 심지어 현장에 출근하지 않는 사람도 속출해 어쩔 수 없이 인력시장으로 달려가 사람을 조달하는 일의 반복이었다.

 

그리고 결론은.

 

그들이 이용한 택시 운전기사와 고깃집 사장 그리고 술집 주인과 여종업원은 먹고살 만해졌을지 몰라도, 뼈 빠지게 보름을 열심히 일해서 임금(간조)을 받은 처음 그 막노동자 손에는 남아 있는 돈이 없다는 사실이다.

 

 

2)

 

두 번째는 지방의회 선거가 있기 전까지 그러니까 2000년대 공직선거법이 개정되기 직전까지, 정치판에서 벌어졌던 일반적인 현상이다.

 

 

우리나라는 4년마다 국회의원 총선거가 열린다.

 

그리고 선거철이 되면, 선거 캠프에서는 먼저 보는 놈이 임자다.’라는 말이 횡행할 정도로 돈이 차고 넘쳤었다. (안타깝게도 내가 정치판에서 돈 문제에 관해서는 겁을 잔뜩 집어먹는 체질이라, 나와는 무관한 일이었다.)

 

그런 선거 분위기 덕분에, 노가 나는 데가 몇 군데 있었다.

 

우선 동네마다 있는 고깃집이다.

 

웬만한 규모의 고깃집은 총선에 출마한 후보 지지자들로 넘쳐나, 종업원들이 땀을 뻘뻘 흘릴 정도로 노가 났다.

 

동광동 인쇄 골목 또한 밤을 새워 인쇄물을 찍고, 그렇게 인쇄된 인쇄물로 거리가 하얘질 정도였었다.

 

관광버스 업계 또한, 전세 버스가 모자라 아우성칠 정도였기도 했다.

 

어디 그뿐인가?

 

지금도 그 자리에서 장사하는 국제시장 타올 매장에서는, 송월타월은 아예 구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품귀현상을 빗기도 했었다.

 

그리고 동산 유지에서 만들었던 다이알 비누또한 불티나듯 팔렸었다.

 

박정희 시절에는 고무신과 막걸리가, 그리고 내가 정치판에 발을 들인 당시에는 수건하고 비누가 매표 행위에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었던 품목이었던 탓이다.

 

선거판에서 매표 행위로 자행된 일련의 일들은, 국민 개개인에게 악영향을 끼치지 않았고 오히려 국가경제에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구에겐가는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

 

2000년대 이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한 지역구에서 수십억 원을 선거비용으로 사용하는 자들이 비일비재했다.

 

물론 돈이 많은 부자가 그렇게 수십억을 동원해 돈을 물 쓰듯 뿌릴 수 있다면, 그건 경제적 관점에서 절대 반대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딱히 부자도 아닌 사람이 돈 많은 후보를 이겨 보겠다고 빚을 내서 선거를 치르고, 낙선 후 빚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아예 목숨을 끊는 일도 부지기수였다는 사실이다.

 

결국 고기를 얻어먹고 송월타월과 다이알 비누를 받은 수많은 국민이 그리고 일시적으로나마 활성화된 국가 경제가, 일부 당선에 눈이 먼 어리석은 몇몇 사람의 목숨값이자 피의 대가라는 서글픈 현실이다.

 

 

3)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고 난 이후부터, 국가 주도 경기 부양책. 특히 건설·부동산을 동원한 경기 부양책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비록 경제에 무지한 김영삼이었지만, 그의 말대로 똑똑한 경제 참모 덕분에 나라 망하게 하는 짓은 하지 않았었다.

 

물론 김영삼의 가장 큰 실책은 우리 대한민국을 IMF 체제로 몰아넣었다는 점이지만, 사실 우리 경제가 IMF 손아귀에 들어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박정희·전두환 정권부터 이어져 온 부실한 경제 정책 탓이 90% 이상이다.

 

그리고 박정희·전두환이 독재 권력을 휘두르면서도 죽기 전까지 그리고 퇴임 전까지 쫓겨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철권통치에 의한 점도 있지만, 그것보다 우선했던 점은 당시 국민을 배고픔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는 점이다.

 

국민 입에서 배고파 죽겠다는 아우성이 나오면 그때마다 경기부양책을 펼쳐서 임시 땜빵을 시도했었고, 그렇게 누적된 국가 재정의 악화가 결국 IMF라는 국가부도 사태를 불러온 것이다.

 

비록 국민에게 손가락질받고 인기는 없었지만, 김영삼은 뚝심 있게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집권 초 성수대교 붕괴 그리고 삼풍백화점 붕괴 사태 등으로 김영삼은 크게 곤욕을 치렀고, 인간인 이상 김영삼도 무언가 국민 시선을 돌려야 한다는 유혹도 많이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국민의 분노를 잠재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국민이 딴생각하지 못하게 놀고먹게 하는 방법이다.

 

오죽하면 예전 정치학 교재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내용이, 독재 권력 유지를 위해서는 3S(Sex, Screen, Sports) 정책이 필요하다고 하고, 그걸 가장 현명하게 이용한 사람이 바로 노태우 아닌가?

 

만일 노태우가 88 서울올림픽과 프로야구 열기에 편승하지 못했더라면, 또 가라오케나 단란주점이라는 새로운 술집 풍토를 도입하지 못했더라면, 노태우 또한 전두환 이상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을 것이다.

 

물론 그 후과(後果)는 전부 뒤에 올 국민의 몫이 되었고, 그게 바로 IMF 국가부도 사태란 결과로 나타났었다.

 

그런 나쁜 사회 분위기를 완전히 단절한 사람이,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다.

 

노무현 대통령 집권 초기는 카드대란 여파로, 정말 헤아릴 수조차 없는 수많은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강 다리 위에서 몸을 던졌고, 현재 우리나라 지하철의 자랑거리가 된 안전문(Screen Doors) 또한 당시 지하철 역사에서 역사로 진입하는 열차에 뛰어드는 사람을 막기 위해 설치가 시작되었었다.

 

김대중 국민의 정부에서는 IMF 환란을 전 정권인 김영삼 정권에서 싸지르고 간 똥이라면서 핑계라도 댈 수 있었지만, 김대중 국민의 정부 배턴을 이어받은 노무현 참여정부는 김대중 국민의 정부를 탓하기도 애매했다.

 

사실 노무현 참여정부 당시 카드대란은, 국민의 정부 당시 경기부양책의 일환으로 카드 발급과 한도를 무분별하게 늘였던 탓이 강했고, 국민의 정부에서는 김영삼 문민정부가 싸지른 똥을 치우기 위해 소비 진작을 위한 고육지책으로 채택했던 정책이었다.

 

카드를 이용해서 국민이 은행에 쉽게 빚을 내게 하고, 그 빚으로 소비하게 하는 정책이었으니 말이다.

 

 

내가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이유가, 바로 이 부분도 크게 작용한다.

 

직접 옆에서 듣지는 못했고, 참여정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하던 비서진에게 들었던 얘기다.

 

참여정부 초기 카드대란으로 수많은 국민이 한강으로 지하철 선로로 뛰어내리자, 민심은 흉흉하기 그지없었다.

 

당시 집권당인 열린우리당 정책위 의장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김진표라 기억한다.

 

민심이 악화하고 그 결과 집권당 인기가 곤두박질치자, 당시 열린우리당 정책위 의장이 대통령께 경기부양책을 제안했었다고 했다.

 

의장님 말씀대로 경기부양책을 쓴다고 합시다. 그러면 앞으로 5년 후에도 우리 국민이 먹고살 만하겠습니까?”

“........”

 

경제를 약간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경기부양책으로 인한 활황의 대가가 어떻다는 건 잘 안다.

 

굳이 노무현 대통령 말처럼 5년까지가 아니더라도, 3~4년 후에는 앞서서 질렀던 비명보다 훨씬 더 큰 비명을 지르는 상황이 도래할 뿐이다.

 

그랬기에 정책위 의장 또한 대통령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던 거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말은 이어졌다.

 

지금처럼 경제 정책 기조를 유지하면, 언제쯤 우리나라가 IMF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앞으로 7~9년 정도는 걸려야 합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내가 5년 동안 국민께 욕을 좀 듣고, 차기 대통령이 임기 중반까지만 욕 들으면 국민은 살 만해지겠네요?”

그럴 겁니다.”

 

이게 당시 내가 전해 들었던, 노무현 대통령과 당시 열린우리당 정책위 의장 간의 대화 내용이다.

 

그리고 이 대화의 연장선에 있던 일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님은 또다시 자칭 노무현 지지자들로부터 극한적인 비난을 받게 되었다.

 

바로 차기 대통령 당선이 유력했던, 한나라당 대표인 박근혜에게 한 연정 제안 때문이다.

 

박근혜에게 외교·국방을 제외한 내치를 전부 맡기는 실세형 국무총리직을 제안했고, 박근혜가 노무현 대통령의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국가 경제 현실을 인식하고 경제 정책 기조를 이어갈 거로 생각했던 거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박근혜는 그 제안을 일언지하 거절했다.

 

그리고 그 거절은 박근혜 본인에게도 불행을 자초하는 행위였으니, 이명박과 대치 국면에서 자신의 손발이 되어주던 사람을 다 잃었고 그 결과 최순실 같은 자를 측근으로 기용한 끝에 탄핵을 자초했다.

 

또한 우리 대한민국 경제도 되돌이표 신세가 되고 말았다.

 

 

맺음말

 

이재명의 승수효과. 참으로 듣기 좋은 표현이다.

 

그리고 호텔 경제론도 그냥 듣기에는 진짜 맞는 이론처럼 들린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 하나는, 노쇼를 당한 호텔 주인만큼은 망하고 만다는 사실이다.

 

유튜브에 올라온 댓글 중에 정말 이재명의 경제 정책을 꿰뚫는 짧은 글이 있어 여기에 옮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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