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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

지금 당장 유세차로 달려가기 바랍니다.

by 나정치 2024. 4. 11.

 

죽는 일보다 더 힘든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저로서는 차마 누군가에게 전화조차 하기 어려운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번 선거에 자신이 얼마나 온몸과 마음을 던졌는가의 강도에 따라, 강도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캠프의 후보와 스태프는 한동안 죽기보다 힘 드는 시간이 계속될 겁니다.

 

길을 걷다가 누군가 내 쪽으로 손짓하거나 웃기라도 하면 그 사람들이 모두 나를 비웃는 듯하고, '고생 많았다. 괜찮나?'라는 위로의 인사조차도 가식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심정이 그렇더라도, 지금 당장 유세차에 올라타기를 권합니다.

 

속은 문드러지겠지만, 겉으로는 환한 표정으로 감사의 인사를 다니실 걸 권합니다.

 

그리고 72시간 철야 유세든 100시간 사투 유세든, 그렇게 지역 유권자를 만나러 다녔던 훨씬 이상의 절박한 마음으로, 지역 유권자를 향해 고개 숙이고 감사의 인사를 하실 것을 권합니다.

 

 

사례(謝禮)

 

선거가 끝나면 유세차에 올라 지역 유권자께 인사를 드리러 다니는 걸 두고, 그 결과에 따라 '당선 사례' 또는 '낙선 사례'라고 표현합니다.

 

'당선 시켜줘서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하러 다니면서, 당선의 희열을 느끼라는 말이 아닙니다.

 

'낙선 시켜줘서 속 시원합니까?'라는 마음으로, 속으로 복수를 다짐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당선된 후보는 자기를 지지해 주신 지역 유권자들께 무조건적인 감사를 표시하고, 낙선한 후보 또한 지지자에게는 감사를 또 나를 찍어주지 않은 지역 유권자께 겸허하게 다가서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야 4년 후가 있습니다.

 

"나사랑 너, 정말 내가 죽는 꼴을 보고 싶나? 오늘 하루만이라도 좀 쉬고 내일부터 나가자."

 

선거 패배가 결정 난 날 아침마다, 제가 김정길 전 장관에게 원망을 들었던. 아니 제 고집이 세지면 강해질수록 애원 조로 하던 김정길 전 장관의 대답이었습니다.

 

한번 낙선하는 일도 죽을 맛인데 김정길 그 양반은 10.11대 두 번 낙선했던 일을 제외하고도, 12.13대 당선 이후 14. 14대 보궐. 15. 16. 17. 5회 부산시장 선거. 19, 이렇게 연이어 일곱 차례 낙선했습니다.

(18대 총선 당시에는 대한체육회장으로 재임 중이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인정하실지 하지 못하실지 모르겠지만, 14대 총선 이후 16대 총선까지는 당선되리라고 생각하고 선거에 임했던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17대 총선. 2,540

 

정말 지금도 억울해서 이가 갈리는 표 차이였습니다.

 

정동영 당시 열린우리당 당 의장의 '노인 폄훼' 발언이 아니었더라면, 직전까지 15% 이상의 우세 분위기에서 표를 깎아 먹더라도 패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으리라고 예상했던 선거였습니다.

(김정길이 노무현 덕을 볼 수 있을 뻔한 유일한 선거였었습니다. 탄핵 국면의 선거)

 

 

2010년 지방선거. 20096월 김정길 전 장관에게 출마를 권유하면서, 제가 장담했던 득표율이 '37.58%는 죽어도 넘기겠습니다.'였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이자 장담이었던 득표율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 당시 대구에서 생활하던 박사모 핵심 관계자를 찾아가 거래하기도 했습니다.

 

'세상이 뒤집혀도 부산에서 김정길 장관이 시장으로 당선될 가능성이 없다. 대신 당신네 보스의 캐퍼를 늘리려면 이명박의 수족 역할을 하는 허남식을 향해 경고하는 메시지가 필요하다.‘

 

저 말이, 제가 그 양반. 박사모 핵심 관계자를 설득했던 메시지였습니다.

 

덕분에 기초단체장은커녕 기초의원 후보조차 다 내지 못했던 부산에서, 44.57%라는 기적과도 같은 득표율이 가능했었던 것입니다.

 

44.57%가 기적이었는지는 중앙 선관위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903당 야합 이후 부산에서 민주당 세가 가장 강했던 17대 총선에서조차 우리 민주당 후보가 40% 이상 득표한 지역이, 김정길을 포함해서 겨우 5개 선거구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37.58%를 넘기는 일이 목표였고 그 목표치를 훨씬 웃도는 44.57% 득표율을 기록한 선거에서도, 죽고 싶다는 생각은 마찬가지였습니다.

 

패배가 확정된 이튿날 초저녁 김정길 전 장관을, 당시 제가 끌고 다니던 티코(모닝?) 조수석에 태우고 이기대 선착장으로 향했습니다.

 

패배해서 쓰린 가슴을 달래기엔, 이기대 선착장만큼 좋은 장소가 없습니다.

 

해만 지면 주변이 완전히 컴컴한. 지금은 다르겠지만 당시만 해도 산 위의 아파트 불빛 말고는 이기대 선착장 주변은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었습니다.

 

"너 인마, 날 죽이려고 여기 오자고 했나?"

"왜요? 장관님도 죽고 싶으십니까? 저하고 오늘 여기서 같이 죽을랍니까?"

"......"

"저는 장관님이 이번 결과에 실망하지도, 또 그렇다고 고무되지도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딱히 더 이상의 말이 필요치 않은 사이였습니다.

 

그 정도 말이면 김정길 전 장관도 다 알아들으실 양반이고, 저 또한 김 장관이 뭐라고 말씀하시면 알아들을 정도는 되었으니까요.

 

그런데도 진짜 더럽게 아팠습니다.

 

그 양반은 저보다도 훨씬 더 아팠을 겁니다.

 

정말 이기대 선착장 앞 시커먼 바닷물에 몸을 던지고 싶었을 겁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찾아가서 몸을 던지려다가 무서워서 돌아 나오면서, 그 순간 느낀 두려움이 오히려 살아갈 용기를 만들어 주곤 했던 장소입니다.

 

대한민국에서 그래도 이름이 알려진 정치인 중에, 김정길만큼 많이 떨어진 정치인은 찾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런 김정길과 저도, 남들이 부산에서 기적이 벌어졌다.’라고 찬사를 보내던 2010년 부산시장 선거에서도 죽고 싶을 만큼 아팠고, 심지어 당선 가능성이 0%라는 전제하에 대통령 선거 예행연습으로 치렀던 19대 총선 부산진() 선거에서의 낙선도 아팠던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냥 남들 눈에 덜 아픈 척했을 뿐이지요.

 

그런 사실을 대한민국은 몰라도 부산에서는 가장 잘 안다고 자처하는 제가, 낙선의 결과를 받아 든 후보와 후보 캠프 관계자에게 이런 입에서 욕이 튀어나올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말도 후보와 캠프 핵심 관계자에게 위로가 될 말이 없으니, 차라리 제 경우를 반면교사 하라는 의미에서요.

 

198411월부터 20136월까지 약 296개월이란 기간을 정치판 전업 백수로 살았습니다.

 

그 기간 중 딱 8년만 만세를 부를 수 있었던 시기였고, 나머지 216개월은 눈물과 아픔의 세월이었습니다.

 

그래도 버텨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께는, 4년 후라는 희망이 있지 않습니까?

 

거듭 이야기하자면 당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생각에, 2010년 지방선거 당시까지만 해도 부산 16개 기초단체 선거구와 158개 선거구 기초의원 후보 공천조차 어려웠었습니다.

 

기초단체장은 16개 선거구에서 민주당 공천 신청자가 7, 야권 단일후보로 민주노동당 1명 국민참여당 1명까지 포함해 봐야 절반 겨우 넘긴 숫자였을 뿐입니다.

 

158개 선거구에서 겨우 33명이 공천신청을 했고, 33명 중 28명이 당선되었습니다.

 

이랬던 부산이 지금은 서로 공천받기 위해 경선하는 상황까지 이르지 않았습니까?

 

그만큼 부산에서 민주당 정치인으로 또 당원으로 살아가기가 좋아졌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2026년 총선을 준비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지금 당장 유세차에 오르시길 권합니다.

 

그게 후보 여러분과 우리 부산시민에게 도움 되는, 유일한 길이자 방법입니다.

 

그간 여러분의 분투에 박수를 보내면서, 앞으로 4년간 여러분의 행보를 따스한 눈으로 세심하게 지켜보겠습니다.

 

부산에 사는 한 사람의 유권자로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