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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는 글

국가를 훔치다! -1회-

by 나정치 2024. 4. 20.

여느 날처럼 학원을 마치고 버스를 타기 위해, 보림극장 건너편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넘었다.

 

아까 7시쯤 학교 앞 분식집에서 군만두 한 접시를 털어 넣긴 했지만, 버스 정류장에 늘어선 손수레에서 파는 뻘겋게 양념 범벅인 떡볶이가 나를 유혹한다.

 

어서 와.”

다섯 개만 먹을게요.”

 

시뻘건 양념으로 버무려져 먹음직스럽게 생긴 어묵에, 갖은 채소를 채 썰어 올려둔 떡볶이 꼬챙이를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맵싸하면서도 달짝지근한 떡볶이 양념이 내 입 안을 부유하면서, 잠시 황홀함에 눈을 지그시 감는다.

 

평소대로라면 버스가 도착하려면 아직 10분쯤 남았기에, 떡볶이 맛을 음미하기엔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다.

 

그런데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처음 듣는 노래를 부르면서 도로를 점거하기 시작했다.

 

와서 모여 하나가 되자.’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물가 심어진 나무같이


대학생으로 보이는 형들은 같은 노래를 계속 반복해 불렀고, 노래가 계속될수록 사람들이 몰려와 교통부 로터리 일대 도로를 가득 메웠다.

 

학생, 빨리 저 밑 길로 뛰어가서 버스 타.”

?”

떡볶이 먹은 거 계산하고, 빨리 집으로 돌아가라고.”

아직 덜 먹었는데요?”

나도 장사 접어야 하니까, 빨리 계산하고 가라고. 좀 있으면 경찰들 들이닥칠 거고 그러면 오도 가도 못해.”

 

요즘 청년들은 신기해할 일이지만 이 당시에는 통행금지가 있었고, 그래서 10시 반이면 대부분 시내버스가 끊긴다.

 

그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노점상 아주머니가, 나보고 빨리 계산하고 집으로 가라고 재촉하시는 거다.

 

조금 지체했다가 통금에 걸리면, 고등학생이라고 하더라도 밤새 파출소에 잡혀 있다가, 새벽에 부전동 즉결 심판소로 직행해야 하니까.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들이 도로를 점거하자, 내가 떡볶이를 먹던 노점상 아주머니뿐 아니라 이웃한 장사꾼들도, 서둘러 손수레를 정리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주머니의 재촉에 나는 동전을 꺼내 떡볶이값을 계산했고, 계산을 끝내자마자 아주머니는 손수레를 끌고선 빠르게 현장을 벗어났다.

 

그러는 사이에도 대학생들의 숫자는 점점 불어났고, 나는 오지도 않을 버스를 기다리며 형들이 부르는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서면으로 갑시다!”

가자! 서면으로!”

 

무리 중 누군가가 큰소리로 서면으로 가자고 외쳤고, 그러자 선두에 있던 무리부터 서면을 향해 행진하기 시작했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내 맘의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서면 로터리에서 농성하던 데모대는 다시 거제대로를 통해 이동했고, 데모대 행렬을 뒤쫓던 나는 교대 앞에서 데모대 행렬에서 이탈했다.

 

거기서 우리 동네인 연산동까지 걸어갔지만, 자정을 훨씬 넘긴 새벽임에도 통행금지를 단속하는 경찰관이나 딱딱이를 치며 돌아다니던 야경꾼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집 대문 앞에 도착하니, 불이 훤하게 켜진 마당이 눈에 들어왔다.

 

 

 

* 제목을 '내가 청와대의 주인이다!' 에서 [국가를 훔치다!]로 변경했습니다.

 

1회 본문 내용 중, 1979년 벌어진 부마항쟁 당시 상황이 언급된 일부를 옮겼습니다.

 

제가 직접 목격한 상황이고, 어쩌면 제가 지난 30년(+10년)을 정치판에서 살 수 있게 만든 계기가 된 사건이기도 합니다.

 

[국가를 훔치다!]는 60회~70회까지는 문피아에서 무료로 공개되고, 이후 유료로 전환할 예정입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번거로우시더라도 문피아 회원 가입을 하시고, 선호작 등록과 추천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4월20일 현재 31회까지 진행 되었습니다.

 

https://blog.munpia.com/debs01/novel/406579 <--- 문피아 '국가를 훔치다!'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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