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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삶의 이야기

교육 특히 장애 아동의 교육, 그리고 안타까움

by 나정치 2024. 2. 2.

# 1.

 

19825월경으로 기억한다.

 

당시 나는 대학방송국 기자였고, 대학 내 봉사동아리의 취재요청을 받아 해운대역에서 동아리 회원들을 만났다.

 

회원들이 다 모이자마자 동아리 회장은 회원은 인솔하여 해운대역 뒤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정확한 기억인지 확실하진 않지만, ‘◯◯이라는 간판이 있는 대문 앞에 도착했고 거기서 양옆에 가로수가 심어진 도로를 따라 안쪽 건물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때 정말 이상하게 생긴(장애인을 비하하자는 의도가 아니다. 그 당시 내 머릿속 느낌이 딱 이랬다.) 아이·청년들이 우리를 향해 달려왔고, 그 친구들은 동아리 회원들이 들고 온 물건(위문품)을 받아 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머리통이 수박만 한 20대로 보이는 청년 하나가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내 손을 꽉 잡았고, 순간 나는 끔찍하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방문한 그곳은 뇌성마비를 비롯한 신체적·정신적으로 완전하지 않은 장애인을 보호하는 시설이었다.

 

아무튼 지금 생각하면 과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 행동이었지만, 동아리 회원들의 공연을 비롯한 몇 가지 행사가 진행되었다.

 

그런데 그때 문제(?)가 발생했다.

 

갑자기 악취가 진동했고, 그 악취의 원인 제공자인 청년이 날뛰기 시작한 거다.

 

그러자 내 또래 또는 나보다 두어 살 많을 것으로 짐작되는 여선생님이 달려와, 그 친구를 달래 바깥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 10여 분 후에 그 여선생님은 해맑은 웃음을 짓는 그 청년의 손을 잡고, 다시 동아리 회원들이 공연하는 교실로 되돌아왔고, 그 여선생님 손은 촉촉이 물기로 젖어 있었다.

 

 

그냥 서너 살짜리 아기라고 생각하면 돼요.”

덩치가 저렇게 큰데요? 나이도 우리하고 비슷한 나이일 것 같고요.”

신체적인 나이는 그래도, 생각은 서너 살짜리하고 비슷하거든요.”

그러면 바지는?”

빨아야죠. 똥 좀 묻었다고 버릴 순 없잖아요.”

 

취재를 왔으니, 선생님과 인터뷰는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나는 인터뷰하는 게 아니라 순간 그 여선생님께 빠져들어, 내 눈에는 그 여선생님이 사람이 아닌 천사가 강림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선생님 덕분에 그간 내가 가지고 있던 장애인에 대한 관념이 바뀌기 시작했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끔찍하게 느껴지던 청년들이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단순한 취재 대상이었던 그 여선생님이, 내게는 세상 그 누구보다 예쁜 천사 같은 여성으로 각인되었다는 점이다.

 

아마도 그때 그 여선생님은, 지금 대한민국 어느 가톨릭교회에서 수녀로서 사는 삶을 살아가고 계실 것이다.

 

 

# 2.

 

학부모에 대한 실망과 돈 문제가 아니었더라면 아직 악착같이 유지했겠지만, 10여 년 전에 장전동에서 아이들의 숲이라는 방과후학교를 운영했었다.

 

요즘 젊은 부모들이 들으면 기겁할 얘기지만 당시 내가 방과후학교를 운영하면서 철칙이 있었고, 그걸 각서라는 이름으로 강제했었다.

 

-. 학교에서 아이들의 숲으로 데려오는 건 내가 하지만, 부모가 퇴근한 후에 아이들의 숲을 직접 방문해서 아이를 데려간다.

 

-. 음악·미술·체육관을 제외한 학습을 위한 학원에는 절대 보내지 않고, 만일 이를 어길 시에는 아이들의 숲을 그만둔다.

 

-. 필요에 따라서 체벌할 수도 있으니, 체벌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위 세 가지 철칙 때문에 장사는 안 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학부모 처지에서 아이들의 성적 문제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사안 아니던가?

 

그런데 10년이 넘은 지금에 와서 되돌아봐도, 당시 그 조항은 아이들에게 분명 도움이 되는 일이란 결론이다.

 

당시 아이들의 숲에 다녔던 아이 중에 제대로 된 대학에 합격하지 않은 아이가 없고, 심지어 쟤는 공부 대신에 아이돌 가수나 하는 게 맞겠다.’라고 얘기했었던 놈조차, 신라대 유아교육과를 졸업하고 어린이집 선생님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체벌 문제로 아이들의 숲학부모와 장전초등학교 학부모 간에 언쟁이 있기도 했었다.

 

무슨 저딴 선생이 있는 곳에, 아이를 보내느냐?’고 하는 말에, ‘아이들의 숲학부모 되는 양반이 발끈한 이유다.

 

체벌을 이야기하고 각서를 받으면서, 나는 체벌 도구를 학부모에게 보여줌과 동시에 그걸 직접 학부모에게 시연하기까지 했다.

 

지금도 우리 집 어느 구석엔가 처박혀 있겠지만, 절에서 스님이 사용하시는 죽비와 비슷하게 만든 대나무 몽둥이고, 이따금 내 어깨를 두드리는 용도로 사용하기도 했다.

 

 

아이들의 숲을 운영하면서 나를 즐겁게 만들어 준 아이도 많았고, 정말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이 끔찍하게 여겨질 정도로 만든 아이도 있었다.

 

요즘 아이들 대부분을 ADHD 증후군 환자라 얘기하는 사람도 이따금 있지만, 희한하게도 매년 그런 증세를 보이는 아이가 매해 한 명씩 아이들의 숲에 지원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한 해는 정말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의 대단한 놈이 있었는데, 이듬해 한 학부모가 울면서 사정을 하소연하는 것이었다. (보낼 아이는 데려오지도 않고.)

 

그래서 지금 하나 있는 아이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설명하고, 그 아이의 입학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부모님의 사정이 딱하긴 했지만, 그 아이를 아이들의 숲에 받아들이면 그 아이 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데, 이미 아이들의 숲대표 꼴통만으로도 나머지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처지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결국 함께 교사 생활하면서 아이들의 숲업무를 마친 후, ‘아이들의 숲에서 발생하는 적자를 메꾸기 위해 영어 교습을 하던 아내가 꼬드김에 넘어가, 문제의 그 아이를 입학시키게 되었다.

 

어쨌든 그 두 꼴통 덕분에 내 목청은 더 높아졌고 한 놈은 아이들의 숲졸업, 뒤에 온 한 놈은 정상인 아이 비슷하게 변하자 갑자기 그만두었다.

 

사실 이 일로 배신감을 느껴 아이들의 숲문을 닫기로 마음먹었던 거다.

 

웃기는 일은 아이들의 숲문을 닫은 이후에도, 내가 ADHD 성향의 아이를 정상으로 만들어 준다는 소문이 퍼져, 예전 공개된 휴대전화로 애원하는 부모들의 전화를 자주 받기도 했었다.

 

개인교습이라도 할 수 없느냐는 말이었는데, 아이들이 가진 그런 성향의 치유는 혼자서 되는 일이 아니라 아이들과 어우러진 과정에서 치유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다른 한 아이가 있었다.

 

부산대학교 어린이집에 다니던 시절부터 가깝게 지내던 아이 부모였는데, 그 부모란 사람 둘 다 먹고사는 문제로 바쁜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부산대학교 어린이집이 파한 후에는 우리 집으로 그 아이를 데려와 지내다가, 엄마가 퇴근하면 데려가는 일이 반복되었었다.

 

그런데 그놈이 애착이 많은 성격인지 아니면 부모의 사랑에 갈증을 느낀 것인지, 집에 데려오면 내 딸아이와 똑같은 대접을 받길 원했다.

 

딸아이가 집사람 무릎에 앉으면, 저는 반대편 무릎에 앉아야 하는 그런 놈.

 

그렇게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당연하게도 그놈 역시 방과후학교 아이들의 숲일원이 되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귀엽고 예쁘게만 보였던 그놈이 엇나가기 시작했고 더욱더 머리가 아팠던 점은, 꼴통 짓을 하면서도 집사람 없이 나만 있을 때 꼴통 짓을 한다는 점이다.

 

정말 그때는 초등학생 저학년인 아이에게서 교활하다.’라는 느낌마저 받았다.

 

심지어 아이의 그런 점을 집사람에게 얘기해도, 집사람은 그렇다는 사실을 믿기는커녕 전혀 인정조차 하지 않았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놈 덕분에 유아교육학을 전공하지도 않았던 내가 아동심리에 관한 수많은 책을 찾아보게 되었고, 결국 내 나름의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었다.

 

애정 결핍또는 관심 부족이 원인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나는 부모를 불러 그런 사실을 전달하고 두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일찍 퇴근해서 아이를 데려가라 부탁했다.

 

그 말로 인해 아이 아빠와는 한동안 소원해지기도 했었다.

 

아이 아빠로서는 자기 딸에 대한 험담으로 들렸을 수도 있고, 또 사정을 좀 봐주면 안 되느냐는 식의 원망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확실하게 나타났다.

 

그렇게 부모가 다른 부모들 퇴근 시간에 찾아와서 아이들 데려가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 그 아이는 예전의 귀엽고 예쁜 상태로 돌아가게 되었으니까.

 

 

 

# 3.

세상의 모든 선생님이 착하고 선하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평범한 일반 학교에서 아동을 돌보는 선생님보다, 장애아동을 돌보는 선생님 중에서 특별한 사명감을 지닌 선생님

이 많다는 생각이다.

 

장애아동을 돌보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는 일인지, 그걸 이해하진 못하지만 짐작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자기 아이를 귀하게 생각하지 않는 부모는 드물다.

 

누구나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났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자기 아이 또한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부모가 많은 법이다.

 

그래서 자기 아이가 바깥에서 대접받기를 원하고, 그런 대접받는 일을 당연시하기도 한다.

 

오죽했으면 얼마 전 뉴스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교육공무원이 자기 아이의 담임선생님께 보냈던 문자, ‘내 아이를 왕자처럼 대해야 한다.’라는 뉘앙스의 문자까지 있었겠는가?

 

그런데 장애아동의 부모는 그런 특별함에 더해, 아이가 가진 장애로 인한 측은함까지 더해진다.

 

그랬기에 자기 아이가 상대적으로 차별을 받았다는 생각에 분노하는, 주호민과 주호민 부인의 심정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이해는 하되 그들이 보인 행태에 대해서는 분명 잘못되었다고 지적해 주고 싶다.

 

1:1의 가정교사라면 주호민 부부의 요구가 타당할 수 있겠지만, 주호민 부부가 아이들 맡긴 그곳은 다수의 다른 어린이들이 함께 생활하는 학교가 아닌가 말이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아이를 괴롭히거나 수업을 방해해도 괜찮다(어쩔 수 없다.)는 생각은 위험한 생각이다.

 

그냥 자기만 아는 나만 아니면 돼!’라는,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이자 행동이다.

 

그런데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선생님을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한 행위는, 사회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장애로 인해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는 아이라면, 교육을 통해서 그런 말과 행동이 잘못된 것이란 사실을 배워 깨우쳐야 하는 법이고, 그걸 위해서 선생님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의 장애 정도가 심각해서, 다수의 아이를 돌볼 수밖에 없는 학교에서 그게 불가능하고 그런 교육체제에 불만이 있다면, 그때 장애아동의 부모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주호민 부부의 경우 돈도 많지 않은가?

 

그렇게 우리 공교육 체제에 불만이 많다면, 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장애아동을 학교에 보낼 수밖에 없는 부모와 달리, 개인적으로 과외교사를 채용했으면 아무런 문제될 일이 없다.

 

장애를 비난해서도 안 되는 일이지만, 장애를 가졌다고 해서 그 장애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아무튼 법원의 판단은 나왔다.

 

그 장애아동을 담당했던 선생님에게 내려진 판결은, ‘벌금 200만 원이되, 그 형을 선고유예한다.’

 

그 말은 선고 후 2년 이내에 동종의 범죄사실이 없다면, 선고한 벌금 200만 원을 납부하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전과 사실조차 기록에 남지 않는다는 의미다.

 

죄이긴 하되 죄가 아닌, 조금은 희한한 판결이다.

 

풀어서 얘기하자면, 아동학대의 범죄를 저지른 사실은 인정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사회적 통의(通義)에 반할 만한 사안은 아니란 의미가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판결에 주호민 부부가 아이 가방에 몰래 넣어 증거로 제출했던 녹음파일이, 법원에서 증거로 채택되었다는 점이다.

 

판결 이전에도 장애아동을 담당하시는 선생님들이, 주호민 부부의 아이와 같은 아이를 맡는 걸 꺼리고 불안해할 사건이었는데, 오늘 내려진 판결로 인해 장애아동을 담당하는 선생님들은 아이의 가방에 뭐가 들었는지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결국 이런 현실은 주호민 부부에겐 도움 될 일일지 모르겠지만, 전국의 수많은 장애아동 부모와 장애아동들에겐 끔찍할 정도의 마이너스를 초래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간 사명감에서 장애아동을 돌봤던 선생님들 머릿속과 가슴에, 이젠 그 장애아동들이 보듬고 돌봐줘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월급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노동이란 생각이 들게 되진 않을까?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라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은 어떤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이번 주호민 부부 사건은 위의 저 말에 꼭 들어맞는 사건인 듯하다.

 

그간 사랑으로 정상적인 범주에서 약간 벗어난 아이를 돌봐왔던, 장애아동 전담 선생님들의 부드럽고 훈풍이 가득했던 그 마음에, 찬바람을 불러일으키고 꽁꽁 언 얼음덩이로 만든 어리석음일 것이다.

 

나의 이런 걱정이 현실이 되지 않기만 기대할 뿐이다.